노르웨이의 화가 에드바르드 뭉크
노르웨이의 화가 에드바르드 뭉크는 노르웨이의 오슬로에서 자라나 왕립 미술공예학교에서 자연주의 화가인 크리스티안 크로그의 지도하에 미술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뭉크는 독일과 프랑스, 그리고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빈센트 반 고흐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폴 고갱의 색채 사용과 단순화된 형태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또한 뭉크는 정신분석학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뭉크는 어렸을 때 그의 부모님과 남동생, 그리고 누나가 죽었고, 뭉크와 누이동생 둘 다 정신병을 앓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불행은 뭉크의 작품들에서 많이 나타나는 절망적인 분위기와 질병, 그리고 고립에서 오는 불안감을 설명해 줍니다. 이는 특히 1907년에 그려진 사망한 뭉크의 누이인 소피아의 초상화에서 잘 드러납니다.
에드바르드 뭉크는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었지만, 뭉크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지만, 뭉크는 자신의 불안감에 사로잡힌 자신의 그림들을 세밀한 계획으로 작업해 나갔습니다. 1893년 그려진 뭉크의 '절규'는 실존의 고통을 형상화한 대표적인 작품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1890년대에 뭉크는 넓은 삭면으로 그림의 구성을 변형시키기 시작했는데, 거친 붓질과 왜곡된 형상에 의해 강조된 꾸불꾸불한 윤곽선을 특징으로 했습니다.
1892년 뭉크는 베를린 미술가 협회의 초청을 받아 베를린에서 그림을 전시하게 됩니다.
일주일 만에 막을 내린 이 전시회에서 1893년부터 1894년 사이에 그려진 뭉크의 작품 '사랑과 고통'은 엄청난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흡혈귀'라는 별칭을 얻기도 하였습니다.
이 전시회에서 뭉크는 1893년부터 1913년까지의 작품인 '생의 프리즈: 삶, 사랑, 죽음에 관한 시' 연작 가운데 첫 번째 작품도 전시되었습니다. 이 연작을 통해 뭉크는 자신의 삶 전체를 되돌아보려고 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고 합니다.
1908년에 신경쇠약에 걸린 후 뭉크의 작품들은 좀 더 낙천적으로 변하기 시작하였고, 뭉크는 점점 더 자연의 풍경에 관심을 가지고 그리게 됩니다. 뭉크는 또한 오슬로 대학교에 벽화 연작을 그렸고, 많은 양의 그래픽아트를 제작했습니다.
1916년 뭉크는 오슬로 근처의 에켈리로 이사하여 자신이 죽기 전까지 이곳에서 살았으며, 그의 80번째 생일이 지나고 얼마 되지 않아 그는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절규
절규는 노르웨이의 표현주의 화가 에드바르드 뭉크의 1893년 작품으로, 노르웨이의 국립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뭉크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표현성이 강하고, 유명하게 알려진 작품입니다.
뭉크는 작품에 다음과 같은 글을 덧붙여 설명했다고 합니다.
"두 친구와 함께 산책을 나갔다. 햇살이 쏟아져내렸다. 그때 갑자기 하늘이 핏빛처럼 붉어졌고 나는 한 줄기 우울을 느꼈다.
친구들은 저 앞으로 걸아가고 있었고 나만이 공포에 떨며 홀로 서 있었다. 마치 강력하고 무한한 절규가 대자연을 가로질러가는 것 같았다."
절규라는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남성의 형상이 이 작품에서 유령 같은 모습의 인간으로 표출되어 있습니다.
양손을 얼굴에 대고 전율하는 이 인물은 화면의 아래쪽에 위치하여 정면으로 관객을 향하고 있으며, 그의 해골 같은 얼굴에는 공포에 가득 찬 절규와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뭉크는 이 작품의 배경 화면의 구성을 대담하게 사선으로 처리하였으며, 작품의 얼굴선을 동적인 처리와 빨강. 파랑. 노랑의 삼원색에 맞추어진 배색 등으로 형식적인 면에서 더욱더 강렬한 효과를 나타냅니다.
붉은 구름은 마치 불타고 있는 것처럼 공포스러운 화면 효과를 나타내며 절망적인 심리상태를 표현해내고 있습니다.
뭉크는 절규라는 작품을 보는 이들의 감성을 집요하게 자극하며 회화라는 양식을 통하여 자신의 인생관을 표현한 화가입니다. 그리고 절규를 통하여 사람의 내적인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형태의 왜곡과 강렬한 색채, 율동하는 듯한 선 등의 표현 방법을 사용하였고, 이 그림에서 인물은 병마에 시달리는 환자의 모습 그리고 유령처럼 표현되고 있는데,
뭉크는 깊은 좌절에 빠진 사람을 좀 더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이러한 형태의 왜곡을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또 한 절규는 소리 지르면서 절규하는 뭉크 자신의 내면적인 고통을 그린 것이기도 하고 현대인의 불안한 모습까지도 담고 있고 절규의 배경은 다리 위의 거리이지만 내면의 세계를 활보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인 것이라고 합니다.
뭉크는 이 작품을 통하여 변형시킨 작품의 수가 50종이 넘는데 이것은 뭉크가 '절규'에 얼마나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고흐와 뭉크는 스스로의 내면이나 주변이 불안정하여 안타깝기도 하네요.. 특히나 뭉크는 어려서부터 가족을 잃는 아픔과 계속되는 사랑의 실패에 대한 아픔도 많았다고 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참 아이러니 하게도 고흐와 뭉크 둘의 작품은 다른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사랑받고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훌륭한 그림을 볼 수 있다는 즐거움을 주기도 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하지만 그런 그림들이 그들 내면의 아픔과 슬픔으로 탄생했다는 게 조금은 씁쓸하고 속상한 기분도 듭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